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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와카미야 마사코 / 가나출판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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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와카미야 마사코 / 가나출판사)

공유노무사 2019. 4. 9. 10:09

신간 서적은 잘 안 읽는 편입니다. 좋은 책을 고르기도 어렵고 검증되지 않은 책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어김없이 눈이 떠진 새벽에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 이 책 저 책 구경하다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아 이 할머니, 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어.'

일본의 82세 할머니가 코딩을 배워서 아이폰 어플을 만들어 팀 쿡을 만나고 CNN 방송에도 나왔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http://tinyurl.com/y63d5vym

 

 

호기심에 책을 열어 봤는데 단숨에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고, 강력 추천 한다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다만 80세 넘은 할머니 마짱이 "나이 들수록 인생이 재밌어져요" 라는 말 하나 만으로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실패는 없다.

우리는 늘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익히려고 아둥바둥 거립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넘어졌을 때 잘 일어나는 방법입니다. 절대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니 뭔가를 시작하거나 배울 때 '이걸 언제 써 먹을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합니다. 그런 고민을 하며 주저하다가 결국은 시도 조차 못하게 됩니다. 이런 우리에게 마짱은 말합니다. 

 

"뭔가를 시작할 때 굳이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생은 길고, 계속 이어집니다. 단기적으로 보고 실패했다, 좌절했다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실패는 없다. 실패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시작만 해도 성공인 것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해라

마짱은 구글의 채용 성별란에 Man, Woman, Others 라고 표기 되어 있는 것에 감탄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한탄합니다. 대기업의 인재 채용 방식도 다랑어를 사서 몸통만 쓰고 맛있고 영양가 많은 머리나 꼬리는 버리는 것과 같이 획일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런 대기업의 획일적 인재 채용 문화가 대기업이 약해진 원인이라고도 합니다. 이 할머니, 내공이 정말 대단합니다.

 

"인재 채용만 봐도 그렇지요. 대기업의 채용 방식을 보면 다랑어를 한 마리 사서 몸통 부분만을 쓰기 편하게 횟감으로 잘라서 가져가는 식입니다. 대가리나 꼬리 부분은 버리고 가버리지요. 어쩌면 그래서 대기업이 약해진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모양이 복잡하고 조리할 때 손도 많이 가지만 다랑어의 대가리에는 비타민D가 많이 들어 있고 맛도 좋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분을 먹지 않고 버린다면 너무 아까운 일이지요. 쓰기 편하게 잘라낸 몸통만 가져가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인재만 모이는 겁니다. 그래서는 다양성의 문화가 생겨날 수 없습니다."

 

판단은 스스로 해라

마짱은 전쟁을 겪으며 배운게 하나 있다고 합니다. 

‘누구도 정답은 알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조금이라도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며 자신은 20년 이상 「뉴스위크」와 「문예춘추」라는 일본의 월간지를 구독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스스로 생각하려면 일본 국내의 관점만이 아니라 해외의 시선도 필요하다고 까지 말합니다. 

 

마짱은 자신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를 전쟁을 경험하면서 누군가의 말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일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투브 등을 통해 가짜뉴스가 생산, 유통되고 그런 가짜 뉴스를 무비판적으로 소비되고 있는데.. 정말이지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말입니다. 마짱은 우리의 판단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판단의 자립"을 하자고 말합니다. 

 

마짱의 삶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20대에 결혼을 약속한 남자는 사회주의 학생운동(아마 전공투 세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으로 큰 부상을 입고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그 이후에는 도피하듯 외국으로 떠나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짱은 20대에 마음의 병이 찾아와서 휴직을 하게 되면서 평생 비혼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은행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에 어머니의 병 간호를 하면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 처음으로 컴퓨터를 사서 배우기 시작했구요. 20대에 헤어졌던 할아버지가 된 그 남자를 50년 뒤에 만나게 되는 스토리는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겪는 아픔이 느껴집니다. 

 

예전에 읽었던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 필레머 / 토네이도) 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레 베르베르가 "죽어 가는 노인은 불타는 도서관과 같다" 는 말도 생각이 났습니다. 작가 박총은 그의 책 "읽기의 말들"에서 "사람책"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아프리카 속담에서 보듯 평생의 경험에서 얻은 풍부한 지혜와 통찰은 책이 아니라 도서관이라 할 만하다" 라고 합니다. 

 

마짱을 보며 재미있는 책이 많은 도서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생물학적 나이를 먹는다고 좋은 도서관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좋은 생각과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누군가가 찾아올 작은 도서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